2022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전투왕'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이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상호 기자가 30년 넘게 취재해 온 실화들을 바탕으로 학살, 저항, 은폐, 진실의 시간을 치밀하게 따라간다. 이 글에서는 시대적 배경인 5·18의 역사적 의미, 영화의 줄거리,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상징성을 중심으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역사적 맥락 : 영화가 위치한 시대
1980년 5월, 이 시기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처절하게 짓밟힌 시간이자, 동시에 시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대다. 영화 '전투왕'은 이 시간을 다룰 때, 단순한 배경 설명을 넘어서 그날의 감정, 그날의 공기, 그날의 침묵까지 복원하려 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이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 있었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12·12 쿠데타로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다. 이어 1980년 5월, 전국적인 계엄령 확대와 학생운동 탄압이 시작되었고, 광주는 계엄군의 폭력과 시민들의 저항이 충돌한 민주주의의 최전선이 되었다. 영화는 단지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어떻게 왜곡되고 지워졌는지를 중심으로 다룬다. 당시 언론 보도는 계엄군 입장에서 왜곡된 기사들을 내보냈고, 많은 시민들은 진실을 모르거나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호 기자는 이 부분을 강하게 지적하며, 기록되지 않은 역사, 혹은 조작된 기록의 위험성을 영화 전체에 걸쳐 강조한다.
영화는 광주가 고립된 도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의 침묵 속에 외롭게 놓였던 도시였음을 상기시킨다. 정치, 언론, 군, 사법부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할 때, 시민들이 홀로 맞서 싸웠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된다. 또한 영화는 수많은 증언자들의 말을 통해, 당시 시민들은 무장한 폭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상처를 돌보던 공동체였음을 재확인시킨다. 심지어 군부가 빠져나간 뒤 며칠간, 광주는 자치적으로 도시를 운영했다. 이는 5·18이 단순한 폭력 저항이 아니라, 시민 정신의 실천 그 자체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5·18 이후의 시간도 보여준다. 보상도, 사과도, 진실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40여 년 동안,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어떤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관찰한다. 이상호 기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국가의 부채에 대한 증거로 제시한다.
줄거리: 이상호 기자의 시선으로 본 진실
'전투왕'은 단순한 기록물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서사적 긴장감을 지닌 추적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MBC 탐사보도 기자 출신의 이상호다. 그는 1990년대부터 30년 넘게 광주 5·18의 진실을 추적해 왔다. 영화는 그의 개인적인 취재 여정을 따라가며, 기자 개인의 시선과 집요함이 어떻게 하나의 역사 기록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 싸우던 시점부터 시작된다. 그 시작은 한 컷의 오래된 영상 기록이다. 이상호 기자는 카메라 속 시민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이름 없는 이들의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작업은 단순한 고증이 아니라, 지워진 진실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중반부부터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직접적인 증언을 중심으로 서사를 확장한다.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시민군, 계엄군 병사, 광주 시민들, 그리고 당시의 기자와 의료진들까지. 이들의 목소리는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메라 앞에서 울먹이는 한 시민은 말한다. “나는 도망쳤고, 친구는 거기 남았어. 그리고 못 돌아왔어.” 이 짧은 진술 하나에, 광주라는 도시 전체의 아픔이 압축되어 있다.
이상호 기자의 추적은 단순한 고발이 아니다. 그는 국가기록원, 미국 정보기관 문서, 당시 미군 헬기 출격 문건까지 추적하며, 5·18 민주화운동이 단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국제 정치와 한국 민주화가 연결되어 있는 지점을 노련하게 파고든다.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이 ‘국가에 의한 계획적 진압’이었음을 입증하려는 그의 노력은, 곧 진실이 권력과 어떻게 충돌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클라이맥스는 이상호 기자가 전두환의 연희동 자택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 앞에서 기자는 침묵 대신 카메라를 들고, 시민들과 함께 진실을 요구한다.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수십 년간 눌러왔던 진실의 무게다. 영화는 감정적으로 폭발하기보다는, 절제된 분노와 끈질긴 집요함으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메시지: 진실, 저항, 그리고 싸움의 의미
'전투왕'이라는 제목은 매우 상징적이다. 일반적으로 ‘전투왕’이라 하면 싸움을 잘하는 인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영화에서의 전투는 진실과의 싸움, 침묵과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전투왕이라는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다.
영화는 구조적으로 ‘기억의 싸움’에 방점을 찍는다. 이 싸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5·18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시도가 여전히 존재하며, 일부 정치 세력은 이 사실마저도 이념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전투왕'은 이에 대한 경고이자 대응이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묻는다. “왜 아직도 광주는 끝나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관객에게 되돌아오며, 단지 과거를 알고 있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책임을 현재가 감당해야 할 의무임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 속 인상적인 상징은 ‘기록’이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VHS 영상, 수기로 남긴 메모들. 이들은 단지 과거의 물건이 아니라, 진실의 증거이자 증언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어가는 사람이 바로 이상호 기자이며, 그와 함께 싸우는 시민들이다. 이 상징은 오늘날 SNS, 유튜브, 디지털 아카이브가 새로운 전투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영화는 침묵에 대해 경고한다. ‘말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가해자 편에 서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자막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반복된다.” 이 문장은 단지 광주만의 비극이 아니라, 모든 인권 침해와 국가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다.
결국 '전투왕'은 전두환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망각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록이자 선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그 싸움의 당사자가 된다.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가 외면한 진실을 끝까지 추적한 기록이다. 줄거리 속 서사 구조는 기자의 시선으로 정교하게 구축되었으며, 5·18 민주화운동의 배경은 영화의 중심축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메시지와 상징은 단순한 고발을 넘어, ‘우리가 왜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이 영화를 본다면, 단지 관객이 아닌 기억의 목격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