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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기억해야 할 여성의 역사 / 줄거리 / 시대적 배경 / 고증

by hwangsong 2025. 7. 5.

영화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아픈 역사와 그 시대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 작품이다. 사실 기반의 고증과 시대의 공기를 충실히 재현한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피하려했던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게한다. 본문에서는 영화의 줄거리, 시대적 배경, 고증력 등을 세부적으로 분석한다.

 

영화 귀향 포스터 이미지
영화 귀향 포스터

위안부 실화 재구성

영화 '귀향'은 단순한 픽션이 아닌, 철저히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구성된 드라마다. 영화는 1943년경 경상남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된 14세 소녀 '정민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인물은 창작된 인물이지만,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제 증언을 토대로 복합적으로 구성된 대표성 캐릭터다. 그녀의 이야기는 피해자 200여 명의 구술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각색된 것이다.

민아는 마을에 찾아온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친구들과 함께 트럭에 실려 떠나게 된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일본군이 주둔한 중국 만주의 위안소였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인간 이하의 고통과 강제 수용, 폭력, 집단 강간, 살해 등의 참혹한 현실을 낱낱이 보여준다. 민아를 비롯한 소녀들은 이름조차 불리지 않고 ‘번호’로 불리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박탈당한 채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다.

이 영화는 피해자의 시선을 중심에 둠으로써 전쟁 범죄의 본질을 강조한다. 특히 민아가 옆방 소녀 ‘은경’과 나누는 대화, 목숨을 걸고 도망치려 했던 장면, 다른 소녀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장면 등은 허구가 아닌 실제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기반한 이야기다. 생존자 이옥선, 강일출, 김복동 할머니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재현한 것이다.

줄거리에서 중요한 구조는 영화의 ‘이중 시점’이다. 과거 위안부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과, 현재 생존자 정민아의 영혼과 대화하는 '정지은'(소녀상 영혼을 보는 예술가)의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고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 죽음 이후에도 편히 가지 못한 영혼들, 말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위무하는 구성이기도 하다.

영화는 중반 이후로 감정의 폭발을 이끌어내며 전쟁과 여성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민아가 마지막으로 절규하며 숨을 거두는 장면, 그 후 떠오르는 실제 피해자들의 얼굴 사진은 영화적 장치를 넘어, 기록을 통한 역사적 증언이자 사회적 고발이다. 이 영화는 줄거리를 통해 단순한 가해·피해의 구도를 넘어, 그 아픔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할 사명감을 보여준다.

1940년대 시대적 배경

《귀향》이 그려낸 시대는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와 동남아시아, 중국 대륙을 침략하면서 전쟁을 장기화하던 1940년대 초중반이다. 일본군은 점령지에서 군수품과 병력을 보급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여성을 위안소에 강제로 동원하였다. 이른바 '위안부' 제도는 일본군의 전쟁 범죄 중 하나로, 주로 한국·중국·필리핀 등 식민지 또는 점령지 여성들이 대상이 되었다.

당시 조선은 일제강점기의 말기로, 총동원령에 따라 모든 인력과 자원이 전쟁 수행에 강제로 동원되던 시기였다. 학교 교육은 일어로 진행되었으며, 창씨개명과 황국신민화 정책이 강제되었고, 식량과 노동력은 일본 본토로 흘러갔다. 소녀들은 ‘공장 취업’, ‘군속 위생병 모집’ 등의 명분으로 속아 동원되었고, 실상은 전선의 위안소였다.

영화는 이러한 배경을 충실히 반영한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마을 장면에서는 식량 배급표, 헌병의 감시, 일제 동원 선전물, 학교에서 진행되는 애국 교육 등이 등장한다. 이는 당시 조선 사회가 얼마나 철저히 제국주의 체제 아래 놓여 있었는지를 시각적으로 설명해준다. 특히 '헌병'의 존재는 당시 일본 제국이 식민지 국민을 어떻게 감시·통제했는지를 상징하는 주요한 장치다.

1943년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병력과 보급이 급격히 부족해지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위안소 설치가 더욱 조직화되고 강제성이 강화되었다. 실제 일본 정부와 군부는 위안소 운영에 관여했으며, 문서 기록으로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수십 건 존재한다. 영화 속 민아와 친구들이 연행되는 시퀀스는 강제성, 조직적 연행, 이동 경로 등을 정확히 묘사함으로써 이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서는 위안소의 소녀들이 죽어갈 때 일본군이 시체를 암매장하거나, 불태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수많은 피해자가 사망했고, 생존자도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국에 유골조차 남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귀향’이라는 제목은 곧 그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는 현실과,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함께 담고 있다.

이 시기는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았던 폭력의 시대였고, 소녀들에게는 언어조차 빼앗긴 채 존재를 지워버린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피해자들의 ‘말해지지 않은 역사’를 발굴하고, 그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아직도 이 문제는 끝났는가?

귀향의 고증력 분석

《귀향》은 상업 영화로는 드물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시나리오의 핵심 근거로 사용한 작품이다. 실제 감독 조정래는 2002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수차례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보관한 역사 자료, 국제 인권 보고서, 기록 영상을 분석해 시나리오를 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고증 작업 덕분에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현실감을 전달한다.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위안소 내부 묘사다. 좁은 방에 번호로 붙여진 문, 일본군의 대기 줄, 피 묻은 침구, 진통제와 소독약의 부족 등은 실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0년대 국제 청문회에서 “하루 10명, 많을 땐 20명 이상 상대했으며, 거절하면 칼로 찔리거나 죽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영화 속 민아의 방 장면은 이 증언을 시각화한 대표 장면이다.

또한 일본군 묘사 역시 클리셰에 의존하지 않고 고증 중심으로 연출되었다. 군복, 계급장, 무기, 언행, 명령체계 등은 당시 제국 육군 기록에 기반해 제작되었으며, 일부 배우들은 촬영 전 군사 고문과 훈련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일본군이 소녀들을 줄 세워 점호하고, ‘고장난’ 아이들을 ‘폐기’하는 장면은 일본군 위안소 내부 문서에서 드러난 용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언어 고증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군은 당시 조선인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으며, 영화 속 헌병이나 군인이 사용하는 단어—‘쯔기’, ‘무리다’, ‘다이죠부’ 등—은 실제 점령지에서 쓰였던 명령어와 회화체다. 반대로 소녀들이 서로를 부를 때는 사투리 섞인 조선어를 사용해, 식민지 사회 내 언어 단절과 정체성 상실을 강조한다.

의상과 미장센 역시 매우 정교하다. 소녀들의 옷은 전형적인 1940년대 농촌 복식이며, 나무로 만든 지게, 조리, 항아리, 흙담 집까지 모두 1930~40년대 민속자료를 바탕으로 재현되었다. 이처럼 고증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라, 관객이 실제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몰입 요소로 작동한다.

또한 영화 말미에 삽입된 피해자 실존 사진과 음성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문다. 실존 인물의 사진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영화가 다룬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누군가의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요컨대 《귀향》은 역사 고증에 있어 가장 뛰어난 수준의 재현력을 보여주는 한국 영화 중 하나이며, 단순한 연민이나 감정적 몰입이 아닌, 철저한 사실 기반의 설계로 진정성을 확보했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국가기념일인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과 교육 자료로도 사용되는 이유다.

《귀향》은 고통의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드문 한국 영화다. 줄거리의 전개, 시대의 재현, 고증의 정밀도 모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단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자 현재의 메시지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기억과 책임, 그리고 행동을 요구한다.